§ 특허 트롤, 인털렉츄얼 벤쳐스
미국 최고의 인기 파드캐스트인 This American Life의 지난주(7.22) 방송분은 “When Patents Attack!”이란 제목의 에피소드였다. 현행 특허제도가 얼마나 악랄하게 이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특허 분쟁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청을 권한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에 보면 네이쓴 미르볼드(Nathan Myhrvold)의 인털렉츄얼 벤쳐스(Intellectual Ventures)라는 라이센싱 회사가 도마에 오른다. 특허를 생산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으면서 특허”권”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발목만 잡는 부류의 사람들을 특허 트롤(patent troll)이라고 하는데, 인털렉츄얼 벤쳐스 같은 경우 업계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특허 트롤로 통한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 인털렉츄얼 벤쳐스에 다니는 내부자들의 시각이다.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인 미르볼드는 물론이고, 이 회사의 사원들은 모두 좋은 교육을 받았고, 똑똑하고 세련된 감각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이런 시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에도, 자신들의 행태가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소속 집단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충성심을 보인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유효과(endowment effect)의 일종이다. 소유효과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론적 오류(cognitive bias)의 하나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 소유효과
이 이야기만 들어서는 “무언가를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걸 소유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여기서 말하는 소유효과란 그런 게 아니다. 이를 증명(?)한 대표적인 실험을 잠시 살펴보자면,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만 어떤 물건을 준다. 뭐,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몇천원짜리 티셔츠나 머그잔 따위면 된다. 그리고 두그룹 사이에 이 물건을 거래하라고 하면 이 거래는 거의 성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미 물건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부르는 값이, 이를 사려는 학생들이 지불하려는 값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그룹으로 나눴다는 게 중요하다. 예전부터 그 물건, 예를 들어 티셔츠를 새로 한벌 살 생각이었다거나, 다양한 머그잔을 모으길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그에 맞춰 물건을 준 게 아니라, 무작위로 고른 학생들에게 무작위의 물건을 줬음에도, 이들이 이런 물건들을 받고 나니 이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이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게 됐다는 게 소유효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데, S모사와 L모사 둘을 놓고 고민하던 취업 준비생들 중, 취직이 되기 전부터 둘중 하나에 대해 강력한 선호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어느 회사라도 붙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사명감에 빠져서 취직전부터 “나의 길은 이것 하나밖에 없어”라며 어떤 한 회사 취직 서류만 준비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정작 취직을 한 후에는, 어쩐 일인지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경쟁사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설령 객관적으로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매우기 위해 회사가 부단히 노력 중이기 때문에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느끼거나, 아니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사람들이 세뇌가 됐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직원들이 실제로 회사나 회사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회사를 내 직장으로 여기는 이상 소유효과가 발생해서 나타나는 일이다. 물론 세뇌를 전혀 안 시키는 건 아니지만, 세뇌가 그렇게나 효과적으로 동작하는 이유는 이런 소유효과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인털렉츄얼 벤쳐스를 다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비지니스 모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들이 외부인들보다 특별히 악랄하거나, 돈을 밝힌다거나, 아니면 멍청해서 특허권을 긁어 모으고 이를 이용한 분쟁을 즐기기 때문이 아니라, 인털렉츄얼 벤쳐스에 대한 소유효과가 작용하면서 외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행위가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 길 건너기
여기에 인간의 의도치 않은 위선도 한몫을 한다. UPenn의 심리학자 로버트 커즈반(Robert Kurzban)은 자신의 책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Evolution and the Modular Mind〉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이를 설명한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 하면 차들이 잘 서준다. 특히 보행자가 운전자와 눈을 마주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내가(보행자) 길을 건너려 한다는 걸 너가(운전자) 봤으니 차를 서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UPenn이 있는) 필라델피아에서는 이러다가는 차에 치여 죽기 딱 좋단다. 그 이유인즉슨 이렇다. 차와 사람이 충돌하면 누가 손해일까? 당연히 사람이다. 따라서 차가 오는 걸 아는 보행자라면 무조건 차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운전자와 눈을 마주쳤다는 건 보행자도 차가 오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보행자는 당연히 길을 건너지 않을 것이라고 운전자는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길을 건너려면 차가 오나 살피지 말고, 길을 잃고 헤매면서 앞뒤 분간이 안 가는 사람마냥 길을 건너란다. 한마디로 “관광객처럼 보이면” 좋단다. 도저히 차를 피할 방법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만 차가 멈춰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차가 온다는 걸) 모르는 게 약이고, 무지가 힘이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가 모른다는 걸 상대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다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정말로 모르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모든 걸 알기보다는 일부러 모르는 게 있게끔, 인간은 때로는 멍청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위선적이게끔 진화를 했다는 것이 커즈반의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저걸 정말 모르는 게 가능한가” 싶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뭔지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 위선과 책임 회피
커즈반과 같은 UPenn의 제이슨 데이나(Jason Dana)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 일이 있다. 한 무리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참가자는 참가자 자신과 참가자는 모르는 제3자가 각각 5달러씩 받거나, 참가자는 6달러, 제3자는 1달러를 받는 것 중 한가지를 택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선택에 따라 돈을 지급받는다. 이 경우 실험 참가자의 2/3 이상이 자신의 1달러를 희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5달러를 받는 선택을 한다.
자, 이번에는 또 다른 한 무리의 참가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자신이 5달러를 받을지, 6달러를 받을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제3자는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1달러를 받을 수도 있고, 5달러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5달러/5달러, 6달러/1달러의 지급 비율이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5달러/1달러, 6달러/5달러일 수도 있는데, 선택권자는 이 네가지 경우 중 어느 게 걸릴지 모르는 거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당연히 6달러를 받겠다고 선택한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위와 동일한 상황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5달러와 6달러를 선택하기 전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제3자가 얼마를 받을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실험 참가자들은 어떻게 할까? 이를 미리 확인하고 제3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택을 할까? 아니면 그냥 자신이 6달러를 받는 선택을 할까? 절반 정도의 참가자는 이 사실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로 피해가 갔다는 사실을 아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인털렉츄얼 벤쳐스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로 인해 특허 트롤이란 별명을 얻더라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상황(deniability)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위선이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앞서 예를 든 실험에서 살펴봤듯 우리 중 절반 정도가 이렇다면, 도덕성의 경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매해진다.
§ 조직과 개인
마지막으로 조직과 개인이 지닌 특수한 관계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같은 개념이 요새 널리 사용되는데, 이 특수한 관계란 집단 지성보다 더 넓은 범주의 emergence 현상과도 연관이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어떤 조직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개개인 모두가 그와 연관된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개미왕국(ant colony)이다. 개미 한마리 한마디를 살펴보면 엄청나게 멍청하다. 큰 그림에 대한 감각은 전혀 없이 페로몬에 반응하여 기계적으로 자기 일을 수행할 뿐이다. 한마리의 개미는 이 험한 세상에서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왕국은 그 개개인의 개미를 모두 생존시킬 수 있는 대단히 효과적인 조직으로 동작한다. 개미 한마리의 특성을 통해 개미왕국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고, 개미왕국을 이해함으로써 개미 한마리가 어떤 특성이 있을 거라고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외부에서 인털렉츄얼 벤쳐스를 바라볼 때,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을 본다. 특허권을 다량으로 사들이고,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특허권을 조금이라도 침해한 사람/기업이 없는지 쥐잡듯이 색출해내고, 이를 법정 분쟁으로 끌고 가거나,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합의금을 뜯어내는 행위에서 “(다소 악랄한) 특허권 분쟁을 통한 기업 이윤 추구”라는 목적과 그 목적을 조직적으로 실천하는 실체를 보는 거다.
그런데 조직의 내부에서는 특히 조직이 크면 클수록, 통일된 목적을 갖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보다는 그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 나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이 눈에 띈다. 물론 직장 동료들 중에 맘에 안 드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주 쉬운 예를 들자면 자신의 직장 상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직이 가진 문제점을 이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거지 같은 직장 상사와 비효율이 넘처나는 조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런 점들 때문에 같이 고생하고, 같이 직장 상사 뒷다마를 까는 직장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전혀 느끼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개개인의 삶, 상사한테 신나게 까이고 와서도 “더러워도 어쩌겠어, 밥 벌어 먹으려면 집어치울 수는 없잖아?”라고 푸념하는 삶들을 보면서 이들이 전부 거대한 음모에 가까운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특허권의 진정한 가치를 존중하는 개개인이 모여 그 “권리”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특허 트롤과 같은 부당한 이미지가 생겨났다고 판단하거나, 그런 이미지가 완전히 부당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의도와 목적을 갖고 행한 행동들의 피할 수 없는 부작용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외부인은 개미왕국의 단점을 보고 있는데, 내부인은 개미의 장점을 보고 있을 뿐이라면 서로 이야기가 될 리 만무하다.
§ 비난과 비판의 사이
네이트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도 이런 인텔렉츄얼 벤쳐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있다. 기업의 나태함 때문이든 무지함 때문이든 3500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됨에 따라, 이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대한 네이트의 다소 미온적인 태도와 성의없(어 보이)는 사과에 열을 내기는 쉽다. 그렇지만 문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우리 모두에게 숨어 있는 인지론적 오류들이 동작할 여지는 커진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바퀴벌레가 나온 것을 보고 소란을 피우면 주인이 정말 미안해하며 변상(?)을 받을 수 있지만, 새X깡에서 쥐머리가 나오면 온 언론이 나서서 두드려대도 기자회견을 통해 N사의 이상한 해명을 듣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는 N사의 운영진이나 근로자들이 특별히 부도덕하거나, 나태하거나, 아니면 이 사람들은 쥐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먹고 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심리적)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과 실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고, 우리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만은 여전히 인정받기를 바란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비롯해 어떤 실수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닌 이런 약점들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문제를 조금 더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거다.
이번 사태는 네이트 혹은 SK컴즈라는 특정 회사만이 아니라,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어쩌면 네이트는 폭탄 돌리기를 하던 와중에 때맞춰 터진 폭탄을 들고 있었던 것 뿐일 수도 있다. 이게 SK컴즈라는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 SK컴즈를 격리 또는 고립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기업 기밀을 공개하지 않는 수준에서) 조금 더 투명하게 밝히는 게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가 단지 그들의 잘못을 질타하는 꼰대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무엇인지 그들과 같이 고민하는 파트너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우리 중 그 누구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었단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고, 이번 문제를 지적함에 있어서 더 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일개 조직이나, 그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특정 개개인이 상처를 입지 않게끔 문제의 틀을 짜고, 언어를 선택하는 조심성 역시 필요하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지적을 개인(또는 특정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만든다면 상대방은 자신의 오류를 깨닫더라도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같은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실수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니다.
지하철에서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을 수 있다. 이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쏘시오패쓰를 제외하면)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은 발을 밟힌 사람에게 사과를 한다. 그렇지만 발을 밟힌 사람이 지나치게 분에 넘쳐 과도하게 반응하면 사과할 마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거다. 이런 사과할 마음이 사라지게 하는 것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공동의 인식보다도 사과를 받는 사람의 태도에 더 민감하다는 것, 이걸 이해한다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설적인 역할"이 무언지도 분명해진다.
@ 캡콜드님의 글에 트랙백. 뭐 꼭 그 글에 연관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읽고 나서 평소에 하던 생각을 한번 정리해야겠단 결심이 선 김에... -_-a 이 이야기는 물론 수해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을 묻는 우리의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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