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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5 최박사 나의 과학은 이렇지 않아 17탄 : 포르노와 성범죄 (8)
  2. 2012/07/23 최박사 나의 과학은 이렇지 않아 : 창조 vs 진화 Special Edition (1)

오늘 올라온 @capcold님의 트윗 :

http://t.co/FHExdTZh 부정부패로 감방 가신 뭇 기득권 정치인님들과 회장님들은 꽤 높은 확률로 지속적으로 c일보를 보셨을텐데, 똑같이 "c일보 계속 보다보면 결국..." 이라고 결론내리면 재밌겠다.
을 통해 알게 된 웃지 못할 기사 하나 (그렇지만 우낀 걸 어떡하지? ㅋㅋㅋㅋㅋ) :
"포르노 계속 보다 보면 결국…" 범죄심리학과 여교수의 증언

이 바닥에서는 꽤나 클래식한 예이긴 한데,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는 날에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수영 능력이 저하돼서 물에 빠져 죽으니까 아이스크림을 못 팔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날 믿어줄까? 당장 "저런 X끼도 박사인 거 보면 박사 학위는 아무렇게나 주나봐"라고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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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조금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발전소에서 일하거나 거대한 송전탑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 발병률이 높다. 이를 바탕으로 "전자파가 암을 일으킨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오오, 그래?"라며 솔깃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단순히 솔깃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자파가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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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이유는 아이스크림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라고 쓰고 믿고라고 읽는다) 있는데 반해 발전소에 대해서는 뭐가 위험한지를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자의 수와 관련된 통계를 아무리 많이 보여줘도 아이스크림은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은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믿음은 사실 틀리지 않다.

아이스크림과 익사자 사이의 숨은 연결고리는 바로 날씨다. 날씨가 더워지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도, 물놀이를 떠나는 사람도, 그리고 물놀이를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리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도 많아지게 마련. 그렇다보니 날씨가 더워지면 아이스크림 판매량도 늘어나고 익사자의 수도 늘어난다. 즉, 아이스크림과 익사자의 수는 (날씨라는 변수를 통한) 상관관계가 있을 뿐 인과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 전자파와 암은 어떨까? 문제는 전자파가 뭔지 잘 모르는, 전자렌지를 돌리거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자파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발전소에서 일하거나 거대한 송전탑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 발병률이 높다"는 보고가 되면, 그 보고가 "발전소와 송전탑에서는 전자파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과 결합하여 순식간에 "아, 지금까지 몰랐는데 전자파는 위험한 녀석이구나"라는 증거로 둔갑을 한다. 이런 "증거"에 기반한 주장은 꽤나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이렇듯 "증거"에 기반하여 생겨난 "전자파는 위험하다"는 믿음은 한번 생겨나면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애초에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은 "발전소에서 일하거나 거대한 송전탑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 발병률이 높다"였지, "전자파를 많이 쬐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 발병률이 높다"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vs 익사자"의 구도에 대응되는 건 "발전소(송전탑) vs 암환자"이다. 그리고 아이스크림과 익사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날씨"라는 연결고리가 필요했듯이 발전소와 암환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어라? 무슨 연결고리가 있지? 전자판가? 응, 그럴 듯한데, 전자파라고 하자. 이렇게 된 거다. 이런 이해하기 쉬운 단순 명료한 해석은 언제나 우리 인간을 유혹한다. 답을 잘 모르겠는 문제란 얼마나 따분하고 골치 아픈가 말이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다.

전자파가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발전소나 송전탑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환자가 많은 것은 단순히 전자파 때문이 아니라 빈부의 차이 등과 같은 다른 사회적 요소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더 많다는 증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거다. 즉, 전자파가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전자파가 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만큼 이를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전자파가 문제다"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그걸 전자파 문제로 단정짓는 순간 다른 숨은 연결고리가 있는지 여부를 찾을 이유가 없어지고, 진짜 위험은 거기에 도사리고 있다.

포르노와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포르노를 많이 본 사람과 성범죄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애초에 청소년기때부터 포르노를 보는 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통계를 접한다면 당연히 포르노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유혹적인 결론이 눈 앞에 딱하고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기사의 "포르노 시청 자체가 범죄로 연결되진 않지만 범행 부채질 할 순 있어"라는 부분은 "포르노와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우린 너네가 포르노 보는 거 그냥 싫어"의 완곡어법으로 들린다.

진실은 포르노를 봤기 때문에 성범죄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선가 성적 욕구가 뒤틀리고 왜곡된 사람들이 포르노와 성범죄를 통해 자신의 그 욕구를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그럴 "듯"한 연결고리에 혹해서 포르노 근절을 통해 성범죄 예방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순간, 그리고 그렇게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익사자를 줄이려던 최박사를 한번쯤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2012/07/25 13:58 2012/07/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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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뒷북인 감이 있지만 꼭 한번은 정리해서 써야지 생각했던 내용이라 뒤늦게 나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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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사 친구가 어느날 와서는 자신의 장례식장에 들어와 온기도 없이 싸늘해진 시체가 갑자기 벌떡 살아일어났다 이야기를 한다면 '이 친구가 포르말린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이 나갔나?'라는 생각을 할 거다. 설령 그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동영상으로는 사람이 정말 죽었다는 걸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난다는 것은 그냥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두 눈으로 어떤 사람이 죽는 걸 확인하고,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을 목격하지 않는 한, 누가 그 이야기를 전한들, 그 이야기하는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기가 쉽지, 그 이야기를 믿기란 좀처럼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사람들은 실제로 믿는다. 대부분의 종교는 그런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소위 신화들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신화에 담긴 이야기들을 두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지금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우리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그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대신에 그 이야기에 모종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나는 여기서 그 믿음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명백하게 거짓이라고 밝혀진 적은 없으니까. 결국 "신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이야기들이니까. 전제가 참이라면 그 결론은 참인 상황에서, 전제가 참이라고 믿는다면, 그 결론이 참이라고 믿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명백하게 거짓이라고 밝혀진 적이 없듯이, 그 모든 이야기들이 참이라고 밝혀진 적 또한 없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내 장의사 친구의 말을 내가 믿어 준다고 해서, 그 친구의 말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 이야기가 참이라고 믿는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이 신의 존재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태생적으로 대단히 사적이고 은밀한 진리이다. 유신론적 종교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깨닫는 행위이든, 무신론적 종교에서 세상의 이치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행위든 전부 대단히 사적인 행위이다. 나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설명을 통해 같은 종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종교적 신념은 생겨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아는 형 중에 학교 생활이 정말 힘들어 보이는 형이 있었다. 지도교수와 궁합도 잘 맞지 않았고, 폭행, 차사고 등 안 좋은 일도 유난히 많이 벌어지는 참 기구한 팔자를 가진 형이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매사가 지긋지긋하게 꼬여서, 그냥 하는 말로 '굿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형은 굿을 하는 대신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로 일들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한다면 처음에는 큰 기대없이 시작한 종교 활동에 크게 의지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실제로 개인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을 극복할 때 종교가 큰 힘이 되는 경우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믿는 종교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리라. 방금 예를 든 것과 같은 다소 극단적인 케이스들뿐만 아니라,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종교의 힘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그 종교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내가 특정 종교를 믿기 시작한 이후로 (크던 작던) 이런 변화들이 생겼다"라는 경험은 그 말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오오, 그래?"라며 더 솔깃할 수 있겠지만, 어떤 두 사람도 완벽하게 동일한 경험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 역시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내면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그건 그냥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었던 일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대단히 사적이고 은밀한 진리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믿지 말라거나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개개인의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우리 중 누구나 하는 일이고, 그게 산다는 거니까. 누군가가 무언가를 진리라고 믿는 것을 굳이 틀렸다고 말하고 다닐만큼 난 아는 게 많지 않다. 다만 그 형이 종교 활동을 하는 대신에 그 당시에 무당을 시켜 굿을 했더라면, 그리고 그 이후에 그 형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면 그 형은 아마 지금쯤 무당을 열심히 믿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간혹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종교와 과학이 갈라진다. 과학은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진리를 논하지 않는다. 의사조차도 희망이 없다고 한 말기암을 투병을 통해 극복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이 겪은 좌절과 고통, 용기와 희망의 크기가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두사람 각각에 대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원동력에 대해 자서전이나 자기개발서를 통해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이 어떻게 암을 극복했는가에 대한 과학적 진리란 존재할 수가 없다.

반면에 우리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본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기에는 이미 400년 정도 너무 늦게 태어났지만, 어쨌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경험은 살면서 수없이 했다. 주변의 다른 조건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사과는 땅에 떨어진다"는 공통된 경험에 대한 진리가 바로 중력의 법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는 행위이다고, 종교의 진리와 그 종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학이 객관적이고 보편적 진리를 찾는다고 해서, 모든 과학적 가설들과 이론들이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이고 보편적 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주의 비밀을 다 풀어낸 것이라고 여겨지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세월이 지나면서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 것처럼, 과학적 법칙들은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인 것이고,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어쩌면 그런 찾아낸 진리 혹은 진리라고 여겨지는 그 무엇보다도, 그런 진리를 찾는 과정에 있다.

일반인들에게야 그다지 관심없는 내용이겠지만, 최근 대한민국이 과학계의 조롱(?)을 받을만한 일이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의 일부 창조론자들의 노력(?)으로 진화론이 일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지게 됐다는 뉴스가 한달반쯤 전에 나왔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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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교회, 창조과학전시회 등 KAIST 종교 논란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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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수준으로 검증된 과학적 이론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진화론은, 분자 생물학과 DNA 단위에서 보면 진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거나, 진화의 증거로 수집된 화석들을 보면 진화가 연속적이지만은 않다는 등의 문제로 단세포 생물에서 출발하여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이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이런 불완전함을 이야기하며 진화론이 교과서에 빠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는 과학을 100% 검증 가능한 진리와 동치로 놓으면서 발생한 오류다.

사실 진화론을 실험적으로 재현해 내기에는, 실험방법론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인간의 수명은 물론 인류의 역사 자체가 너무 짧고 보잘 것 없다. 인간 수명을 100년으로 잡아도 그 수십, 수백만배에 달하는 오랜 시간 전에 있었던 생명의 기원과 발달, 우주의 기원 등을 밝혀내는 일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일종의 탐정놀이이다.

범행현장에 있던 CCTV에 범인의 얼굴이 또렷하게 잡혀 있는 게 아니라면, 다양한 단서와 증거들을 통해 범인이 누구였는지 유추해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구 구석구석에 뿌려진 다양한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내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우주는 "전지 전능한 신이 만든 그대로다"라고 하면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이론인 창조론이 나오겠지만, 이는 우리에게 그 어떤 탐정놀이의 여지도 주지 않기 때문에 과학적 진리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호기심을 박탈한다.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이 실려 있어야 하는 이유는 진화론이 물샐 틈도 없는 완벽한 이론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탐정놀이의 결과로 탄생한 현재까지는 유일한 가설이기 때문이다.

비록 때로는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이런 탐정놀이는 그 자체로 바로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고, 진화론을 과학 교과서에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이런 과학적 호기심을 허용하고 장려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다 잘 가르쳐줄 수 있다.

2012/07/23 16:55 2012/07/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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