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게서 적어도 이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을 구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과 실질적으로 자식이 좋은 교육을 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이 항상 조금은 불편하다. 학교 정규수업, 보충수업, 야자, 학원의 무한 뺑뺑이를 통해 아이들이 무얼 배우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제시할 자료들은 대한민국의 실정에는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쓰려는 이 글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사람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함이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다만 우리가 남의 이야기에 혹해서 우리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기에 문제 제기를 해보고 싶은 것뿐이다.

우선 얼핏 봤을 때 섬뜩한 그래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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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부모의 소득 수준과 미국의 대학 입시 시험인 SAT 점수의 상관관계를 보여준 그래프이다. 확실히 돈 많은 집 아이들이 성적도 좋다. 돈 많은 집 아이들이 질 좋은 사교육을 받아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사교육에 투자하고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의 무한 루프… 부의 대물림, 부익부 빈익빈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세상사는 우리 생각보다 항상 조금 더 복잡하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구분되어야 한다. 경제학자 그레그 맨큐(Greg Mankiw)는 이 그래프를 보면서 집에 있는 화장실 갯수와 SAT 점수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화장실 갯수가 많은 집 아이들의 SAT 점수가 좋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방을 화장실로 개조하여 집 안의 화장실 갯수를 늘림으로써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아주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소득과 아이의 성적간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부의 대물림”, “부익부 빈익빈” 같은 그럴 듯한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정말 인과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돈이 많기 때문에 아이의 성적이 좋다는 설명이야 말로 Duncan Watts의 책〈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에서 경고하는 상식적 설명의 함정이 아닌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러면 다른 가능한 설명이 뭐가 있냐고? 자, 아래의 그래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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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스웨덴에서 1955년부터 197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의 18세 때 IQ 테스트 점수와 그들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소득과의 관계를 나타낸 거다. 빨간색 그래프는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것이고 파란 그래프는 입양된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내서 그 관계를 조사한 거다. 이 그래프를 통해 친아버지의 소득이 높기 때문에 아이의 IQ가 높다는 인과관계적 결론을 유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여기서 첫번째 그래프에서는 철저하게 숨어 있던 변수, 친아버지, 혹은 친부모의 IQ의 의미가 언뜻 드러난다. 바꿔 말해 고소득자들이 소득이 높은 이유를 그들의 IQ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IQ가 아이들에게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건 아닐까?

이쯤에서 IQ는 시험 성적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IQ 높다고 시험을 꼭 잘 보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정확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는 건 통계적 분포다. IQ와 시험 성적의 상관관계를 그려보면 IQ가 높을수록 전반적으로 시험 성적이 좋을까 나쁠까? 결국 시험 성적과 생물학적 친부의 소득 역시 상관관계가 있을 거다.

물론, 우리는 이로부터 유전적 요인이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 실제로 높은 소득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아이의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부의 대물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역시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면 이제 다른 그래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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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부모의 소득과 아이가 자라서 가정을 꾸렸을 때의 소득을 나타낸 것으로, 빨간색은 아이가 친자인 경우, 파란색은 양자인 경우를 나타냈다. 빨간색의 그래프를 보면 부의 대물림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파란색의 그래프를 보면 그 효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그래프가 암시하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을 제거해놓고 봤을 때, 실제로 부의 대물림 효과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는 거다.

결국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니 애들 교육에 헛수고하지 말라는 운명론적 패배주의에 젖거나, 역시 아이들에게 질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는 게 제일 중요해라면 우생학을 부활시키자 따위의 덜떨어진 결론을 내리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돈 많은 집 아이들을 보면 비싸고 유명한 과외 선생 붙이고, 좋은 학원 보내서 좋은 대학 가더라”라며 마치 비싼 사교육만이 아이의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원에 보내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보면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글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꺾었는가(How David Beats Goliath)”가 생각난다. 있는 집은 있는 집대로, 없는 집은 없는 집대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과외를 더 시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 학원에 보내기 위해 애쓰려다보니, 여기저기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야근을 계속 하고…

그런데 정말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모든 부모가 자식들을 XX대 진학률 100%인 강남의 OO학원에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OO학원이 안 된다면 그나마 PP학원이라도”라며 똑같은 방식의 교육을 고집할 게 아니라, 아예 접근을 달리할 수도 있다.

좋은 학원 보내야/가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오히려 아이들 학원을 덜 보내고, 나도 야근을 덜 하면, 내가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거다.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부모는 회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대신 같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됐을 때, 오히려 더 적은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효율적으로 공부를 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하면 뒤쳐지지 않을까?”라는 걱정, “저 학원에서 XX대를 XX명 보냈대! 저 학원에 우리 아이를 넣을 수만 있으면!”이라는 욕망(?)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거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 사회가 통째로(our society as a whole) “학원에 열심히 보내야만 XX대학에 보낼 수 있대”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정말이지 알만한 사람들조차도 그러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더러는 "학원에 보내는 게 꼭 이점이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라면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도 한다. 그런데 정말 밑져야 본전일까? 입시지옥 안에서 아이가 불행하고 미저러블해진다면, 그래도 본전일까?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잘 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신들의 불안감을 없애자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남들하는 만큼은 했다는 자기 위로나 하기 위해 아이의 한번뿐인 청춘을 말려 죽인다면 그래도 본전일까?

또 행복과 같은 모호한 개념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돈을 다른데에 전혀 쓰지 않고 가스렌지로 불붙여 태워없앨 계획이 아니었던 이상, 절대로 밑져야 본전일 수는 없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란 이야기는 그 돈과 시간으로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달리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떤 교육 방법이 더 좋을까를 고민하는 게 귀찮은 부모들의 변명처럼 들린다.

결국 "남들보다 비싼 교육만이 살 길"이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그게 정말 근거는 있는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몇개에 의존해 내린 결론임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참이라고 믿고 사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 믿음 “저 학원에 보내면 XX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실제로 살찌우는 게 우리 아이의 양식, 우리 아이의 미래의 행복인지, 학원 선생의 주머니인지를 생각해보면 그것도 꽤나 식은땀 나는 일이다.

@ 사실 지금 보여준 자료들은 미국과 스웨덴에 해당하는 거라,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정말이지 입시지옥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조사가 조금 더 진행됐으면 좋겠다. 특히 하루에 잠자는 시간 빼고 학교와 학원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없다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굴뚝 같은데, 이건 도저히 대조군 집단(비슷한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의해 학원에 안 보내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 orz 혹시 이미 이런 자료들이 있는데 제가 몰랐던 거라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 반값 등록금 문제로 말이 많은데, 이런 높은 등록금이 실제로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래 그래프는 소득 수준에 따른 아이들의 “대학 졸업률(진학률이 아니다!)”을 나타내는데, 아이의 성적에도 크게 좌우되지만 집안의 소득 수준도 분명히 이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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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11:41 2011/07/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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