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서 출발하는 과학에 대한 신뢰도, 과학에 대한 불신도 결국은 내 입장에서는 경계해야할 대상인지라, 지난번 글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왜 최첨단 과학 기술에 기반한 제품을 그 내용의 검증 없이 무조건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편에서 그런 과학 기술의 유해성 검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를 위해 인공 유방 이야기부터 조금 해보자.

실리콘을 이용한 가슴 성형 수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건 1950대의 일이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의 취향(?)에 따라 일본 성매매 여성들이 가슴에 실리콘이나 액체 파라핀을 주입하기 시작한 것이 가슴 성형 수술의 시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오늘날 같은 실리콘 인공 유방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6년에 미국 식약청인 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 의약품에 대한 조사 권한이 주어졌는데, 실리콘 인공 유방의 경우 10년 이상 큰 문제 없이 사용돼 왔기에 FDA는 추가 조사 없이 안전성 허가를 내줬다.

그런 후 얼마지 않아 일본에서 류마티즘성 관절염, 섬유조직염, 낭창 등의 결합조직병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여성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들이 몇년전에 가슴 확대 수술을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사들은 가슴에 주입한 실리콘과 결합조직병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한다. 1982년에는 호주에서 3명의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여성이 결합조직병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가 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해도 가슴에 삽입한 실리콘이 결합조직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한 여성은 인공 유방을 제조하는 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이를 언론이 집중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한다.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사람들 중 결합조직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두가지 요소—가슴 확대 수술과 결합조직병—를 모두 안고 있는 사람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1990년에는 CBS의 코니 청과의 만남(Face to Face with Connie Chung)이란 프로그램에 여러 여성들이 나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이 지난 세월간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게 실리콘 인공 유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프로그램 진행자인 청은 이들의 이야기에 동조하면서 이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리콘 인공 유방 (사진출처 : http://www.usatoday.com/news/health/2007-01-06-implants_x.htm)


FDA는 꼼꼼한 조사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인공 유방처럼 위험한 물질에 대해 안전성 허가를 내려줬다며 뭇매를 맞았고, 다우 코닝과 같은 인공 유방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결합조직병에 대한 제대로된 역학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실리콘이 실제로 이런 질병들을 야기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만 FDA는 실리콘이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실리콘이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증거가 아직까지는 없다는 이유로 1992년 4월 가슴 확대 수술에 실리콘 사용하는 것을 일시 중지시켰으나, 사람들은 이 미묘한 차이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FDA의 이런 결정이 실리콘의 유해성을 증명한다며 소송이 봇물터지듯 이어졌다. 다우 코닝은 이런 소송 합의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 결국 파산 신청을 한다.

1997년부터 국가 기관에서 가슴 확대 수술이 건강상에 위협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속속들이 발표하면서 실리콘 인공 유방은 다시 FDA의 승인을 얻고, 아직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번의 히스테리로 인해 다우 코닝 같은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1980-90년대 있었던 이 한바탕 소동은 이번 깨끄미 오존 세척기 사태와도 닮은 부분이 있다. 일부 깨끄미 사용자의 호흡기 질환 발생이 일차적 의심을 발생시키고, 그 이후에는 의심이 의심을 증폭시킨다. 정확한 역학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깨끄미의 오존세척기에서 발생한 오존은 경미한 수준의 호흡 장애뿐만이 아니라, 천식, 폐렴, 심하게는 폐암의 재발과 임산부의 유산 등의 원인으로 지목 받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은 깨끄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다 건강하지는 않다는 거다. 즉, 전체 대한민국 국민 중 일부는 다양한 종류의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고, 또 임산부 중 적지 않은 비율이 유산을 한다. 이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길 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진실은, 깨끄미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거나, 유산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깨끄미와 다야한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가슴 확대 수술이 결합조직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혹이 일고나면, 결합조직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슴 확대 수술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깨끄미의 오존이 인체에 유해할지 모른다는 의혹이 일고나면, 각종 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 깨끄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반대로 가슴 확대 수술을 받지 않고도 결합조직병을 앓는 사람들이나, 깨끄미를 쓰지 않았는데 다양한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제기된 의혹이 자신에게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그 의혹이 참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다수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통계학이란 인과관계보다 상관관계를 밝히는데 유용한 학문이기 때문에, 통계학에 기반해 병의 원인을 추적하는 역학 조사는 아주 까다롭고 그 결론 역시 많은 경우에 애매하다. 그렇지만 굳이 그 원인을 찾아야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조사는, 대조군 간의 비교이다. 깨끄미를 사용한 이후부터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만 갖고는 깨끄미가 건강 악화의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핵심은 깨끄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졌느냐를 봐야 한다. 이를 비교했을 때 그 비율에 차이가 없다면, 아주 공교롭게도 운이 없어서 어떤 병에 걸렸는데, 그 타이밍이 깨끄미를 사용한 시점과 맞아떨어진 것뿐이란 이야기가 된다.

기술표준원에서 수행한 깨끄미의 성능 검사 결과만 놓고 봤을 땐, 깨끄미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결론이 날 수도, 인체에 큰 피해가 없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는 애매한 부분에 걸쳐 있다. 그래서 꼼꼼한 역학 조사 결과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만큼 깨끄미가 몸에 해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깨끄미가 살인기계라고 불릴 증거는 아직까지는 없으니 조금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우리와 소비자의 입장에 서 있는 줄 알았던 파워블로거들이 실제로는 판매자의 입장과 더 밀접하더라는 사실에서 느끼는 배신감, 모욕감, 분노 심한 경우에는 역겨움 등의 감정은 모두 자연스럽고 있을 수 있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불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는 것이 당연히 정의롭다고 느끼는 이런 격렬한 감정들이, 우리를 애초에 위험으로 몰아넣은, 상대방—파워블로거, 깨끄미 제조사—의 말을 의심없이 무조건적으로 믿었던 그 감정과 크게 종류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조금은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이런 정당해 보이는 대응이 미래의 우리를 다른 종류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항산화제가 몸에 좋다고 말하거나, 오존 살균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그 외형이 어떻든 간에 과학적 진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듯, 오존 살균기 작동 중에 그 근처에서 일시적으로 오존 농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만을 통해 오존 살균기들이 인체에 해롭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 기술표준원이 깨끄미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리는 대신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인 자발적 리콜 권고를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리콜 명령과 자발적 리콜 권고가 그게 그거다라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FDA가 "인공 유방이 해롭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대신 "인공 유방이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증거가 없다"는 다소 소극적 이유로 실리콘 인공 유방의 사용 정지 결정을 내렸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에 대해 "거봐라, 인공 유방은 몹쓸 물건이다"라고 반응한 것이, 이를 이용해서 법정 소송을 통한 합의금을 받아낸 소수의 몇몇 이외에,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누군가를 성급하게 단죄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주식회사 로러스가 혼이 나야 한다고 밝혀지면 그때 혼이 나면 된다. 파워블로거들이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돈을 버는데 급급해서 허위 광고에 놀아났다면 그 무책임함에 대해서는 그때 질타를 하면 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이고, 모르고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냉정히 판단해볼 때다. 그리고 그런 냉정한 판단을 어떻게 하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시킴으로써, 모두에게 비극적인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을지 숙고하는 것이,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현명한 자세다.

실리콘 사태와 관련 참고자료 : The Science of Fear by Daniel Gar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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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12:18 2011/07/0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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