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달린 도투록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저는 행위와 의도, 정책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것뿐인데, 곽노현이란 인물에 대한 제 판단을 읽으신 것 같군요. 아마도 꼬랑지에 곽노현 교육감이 사임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이렇게 된 김에 제 입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혀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곽노현 교육감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 방송인과 같은 소위 공인들에 대한 인격적 판단은 내리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곽노현 교육감이 성직자이냐 불법주류상이냐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제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뭔가 사정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근거도 “그럴 줄 몰랐는데 실망이야”라고 생각할 근거도 충분치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잘 살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삽니다. 이는 사실 도투록님께서 제 글을 하나 혹은 몇개 보시고 저에 대해서 “실용적인 마인드를 가지신 분”이라고 판단하시는 과정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이런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엄청나게 반사적이고 직관적이고 순간적입니다. 도투록님은 저에 대해 특별한 선의도, 악의도 없었겠지만, 제 글을 읽는 순간 받게 되는 인상이 있었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제가 하는 다양한 말과 행동들이 그 첫인상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제 스스로 또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사실 나는 그렇게 실용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와 많은 시간을 보내보라는 것 외에 저에 대해 이런 사람인지 저런 사람인지 확인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저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객관적 실재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저는 도투록님이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사람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을 건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람들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 갖게 되는 인상이 있습니다. 제가 도투록님 한분께도 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이해시키지 못한다고 봤을 때, 수백/수천만명에게 노출된 곽노현 교육감이 “이번 일로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말만으로 특정 이미지를 무마시키기란 어렵습니다.

앞서서 곽노현 교육감이 성직자이냐 불법주류상인지를 제가 알 길이 없다고 했는데, 제가 곽노현이란 인물에 처음 받은 인상, 이번 일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의 인상, 그리고 그의 해명을 듣고 나서 받은 인상 모두 따지고 보면 단편적인 조각들에 불과합니다. 저는 곽노현 교육감이랑 밥 한끼 먹어본 적도, 차 한잔 마신 적도, 아니, 직접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고, 곽노현을 직접 아는 사람조차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곽노현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은 언론에 보도되는 경력 몇줄과 그가 제시하는 교육 정책 몇가지가 고작입니다.

누군가가 이번 일을 통해 그가 알고 보니 부패한 사람이더라라고 판단하는 걸 보고 부당하다고 느끼신다면, 마찬가지 이유로 그 사람이 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그가 청렴결백하고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없는 인물이라고 믿었던 것 역시 그다지 믿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는 곽노현이나 다른 어떤 정치인들 혹은 방송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성직자냐 불법주류상이냐를 확인하는 일보다도, 차라리 그들이 펼치려는 정책이 어떤 것들인가를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지지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성직자여도 불법주류상이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거죠.

단, 본글의 주석에도 달았는데 이쯤에서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여기서 불법주류상은 공익을 내걸고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으로, 정말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도 이용할 각오가 돼 있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개인적 이득을 조금 취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란 겁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불법”을 저질러서는 절대로 안 되겠지요.

그러면 왜 갑자기 이번 일을 갖고 그가 옷을 벗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하느냐? 곽노현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니” 단순히 실용을 위해 곽노현을 얼른 내치고 다른 일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공직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공직자가 어떤 행동을 어떤 의도를 갖고 했는가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직자가 따라야 할 도덕적/법적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이란 건 다른 사람의 의도는 직접 관찰이 안 되고 행위만을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이란 동물이 가진 한계상, 미리 특정 행위는 특정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자고 하는 일종의 약속입니다.

아무튼 사법부에서 의도를 판단하는 약속과 사회적/도덕적 관점에서 의도를 판단하는 약속은 많은 경우에 비슷하면서도 약간 차이가 있는데, 곽노현 교육감이 본인이 빚을 내면서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2억원을 건내준 일이 여러번 있지 않은데, 돈을 받은 사람이 하필 마지막에 후보 단일화를 했던 박명기 교수였다는 점, 현금을 전달하는 방식의 아주 치밀하게 숨기진 않았지만 어쨌든 제3자를 거쳐서 돈을 직접 건냈다는 점 등의 정황을 봤을 때 이번 일은 많은 사람의 눈에는—법적 문제는 법원의 판결을 두고 봐야 하겠지만—적어도 도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어긴 케이스입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관계의 사람들은 물론 그를 보호하고 싶겠지만, 그런 보호는 그 관계가 개인적인만큼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고, 공직자로서의 곽노현은 도덕적 합의를 어긴 그 행위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곽노현 교육감이 본인에게 아무리 떳떳하더라도 이런 사회적 약속의 의미와 자신이 그런 약속을 어겼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만큼 사임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느냐”고 하신다면, 똑같은 사건이 도투록님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둘러싸고 벌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같은 정도로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밝혀내려고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란 걸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요? 정말로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곽노현 교육감을 지지했던 사람들로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가까울 겁니다.

다양한 재판 과정을 보면 많은 경우에 범법 행위를 입증한 후에도 그 행위의 의도를 입증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의도의 입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보시면—본인이 자백을 한 경우를 제외하면—범법 행위와 관련된 다른 행위들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가 따위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교통 사고로 사람을 쳤을 경우, 이때 본인의 의도가 뭐였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차에 치인 사람이 아는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인가, 운전자가 술을 먹었는가 안 먹었는가, 신호는 지켰는가 안 지켰는가, 사고 후 도주했는가 아닌가 등등의 외부에서 관측 가능한 조건들을 통해서 의도적 살인인지, 과실 치사인지 따위가 분류되는 것도 특정 행위를 특정 의도로 엮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것임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이걸 실용주의라고 묶어버리시거나, 제가 실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하신다면, 글쎄요, 도투록님이 저에 대해서도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서도 어떤 계기로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는가는 한번 정도 되짚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후에도 저에 대해서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서나 도투록님이 갖고 있는 판단이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여겨지신다면, 앞서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실체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도투록님이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저인 겁니다. (영어로는 I am who you think I am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우리말로는 쉬운 말이 없네요.)

2011/08/30 14:58 2011/08/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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