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에 주목하지 마라

분류없음 2011/08/17 05:30 최박사

영국의 폭동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얼마 전에 읽은 던컨 와츠(Duncan Watts)의 책〈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에 이와 관련해서 한번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있기에 조금(이라기엔 좀 많나?) 번역해 봤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폭동 직전의 군중에 대한 간단한 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강조하였다. 정부의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여 마을 광장에 학생 백명이 모였다고 해보자. 학생들은 새로운 정책에 대해 화가 나 있고, 정책 결정과정에 자신들의 입장이 좀처럼 반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만이 쌓인 상태다.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교육을 잘 받은 교양 있는 사람들인만큼 그들 역시 이성과 대화가 폭력보다 낫다는 걸 이해한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감이 있지만, 이 군중 중 개개인은 두가지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하자—한 가지는 정줄 놓고 이것저것 다 때려 부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정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시위를 하는 거다. 각각은,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이 두가지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폭력과 평화를 놓고 선택을 하는 게 아니다—이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도 반응한다. 폭동에 참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들의 행동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들 중 특정 개인이 잡혀서 처벌받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또, 폭동은 물리적 파손 행위를 제한하는 평소의 강력한 사회적 관습을 약화시키는 그 나름만의 원시적인 에너지가 있어서, 위험에 대한 심리적 분별력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폭동은 평소에는 분별 있는 사람도 미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평정을 유지할지 폭력에 가담할지에 대한 선택을 내리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폭동에 많이 참여할수록, 특정 개인이 이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일반적인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리 안에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개개인은 폭력에 대해 서로 다른 경향성을 갖는다. 더 부유하거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덜 입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위해 굳이 감옥에 가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폭력이란 꽤나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정치적으로 유용한 도구라는 주장에 보다 쉽게 현혹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경찰이나 정치인 또는 사회 전반에 대해 이 이슈와 전혀 별개의 불만이 있는데, 이번 일은 그저 쌓인 불만을 터뜨릴 좋은 기회인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맛이 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가 됐든—이런 이유들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만큼 다양하고 복잡할 텐데—개개인은 자기만의 "한계점"을 갖고 있어서, 이 한계점보다 많은 사람들이 폭동에 참여하면 자신도 이에 합류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스스로 자제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소위 "대중 선동가"들—은 이 한계점이 아주 낮을 거고, 학생회장 같은 사람들은 아주 높은 한계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평화에서 폭력으로 "넘어가는" 사회적 영향의 한계점이 있다. 이는 개개인의 행위를 묘사하는 방법으로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커다란 무리의 사람들에 대해 그 개개인이 지닌 각각의 한계점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의 장점은, 미친 사람("아무도 폭동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나는 폭력 시위를 하겠다")부터 간디("남들이 전부 폭동에 동참하더라도 나는 평화시위를 하겠다")에 이르는 집단내의 다양한 한계점 분포가 집단 행동에 대해 흥미롭고 놀라운 가르침을 짚어낸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이기 위해 그라노베터는 각각의 사람이 고유한 한계점을 갖고 있는 아주 단순한 분포를 가정하였다. 딱 한 사람은 한계점이 0이고, 또 한 사람은 한계점이 1명, 다른 사람은 한계점이 2명, 이런 식으로 나가서 가장 조심스러운 사람은 나머지 99명이 모두 폭동을 일으킬 때에만 이에 동참하는 식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우리의 미스터 미친놈—한계점이 0인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갖고 이것저것 집어던지며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 한계점이 1명(폭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1명만 있으면 여기에 합류할 준비가 된 사람)인 그의 똘마니가 이에 동참할 거다. 이렇게 둘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세번째 사람—한계점이 2명인 사람—이 합류하고, 다시 한계점이 3명인 사람이 또 동참하고, 그러면 … 뭐, 어떻게 되는 시나리오인지는 알 거다: 이런 한계점 분포 하에서는, 한사람 한사람 차례로 폭동에 합류하면서 결국 시위자 전부가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카오스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런데 바로 옆 마을에 같은 이유로 같은 규모의 또 다른 무리의 학생들이 모였다고 해보자. 정말로 이렇기는 어렵겠지만, 이 무리의 학생들은 앞서 이야기한 첫번째 무리의 학생들과 거의 동일한 한계점 분포를 가졌다고 하자. 이 두무리의 한계점 분포는 너무도 유사해서, 그 차이는 딱 한 사람뿐이다: 첫번째 무리의 학생들은 모두가 0부터 99까지의 서로 다른 한계점을 가졌었는데, 이 두번째 무리에서는 한계점이 3명인 사람이 없고, 대신 한계점이 4명인 사람이 둘 있다. 바깥에서 봤을 때에는, 이 차이는 너무 사소해서 도저히 감지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신"을 자처하니까 이 차이를 아는 거지,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심리 테스트나 통계적 모델을 이용해서는 이 두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 무리의 집단 행동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시작은 같다 :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스터 미친놈이 폭동을 선도하고 그의 똘마니와 한계점이 2명인 사람이 예외없이 동참한다. 그런데 거기서 암초에 걸린다. 왜냐하면 한계점이 3명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은 한계점이 4명인 두 사람인데, 지금 폭동에 참가한 사람은 3명뿐이다. 그래서 잠재적 폭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난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두 마을의 이웃 동네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 두 마을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자. A마을에서는 여기저기 유리가 깨지고 자동차가 불에 타고 뒤집히면서 끝나는 대대적인 폭동을 보게 된다. 반면에 B마을에서는 몇몇 소란스러운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시위자들을 이리저리 밀치고 다니는 걸 볼 거다. 이 관찰자들이 나중에 노트를 비교할 때, 이들은 이 두 무리의 사람들이나 그들의 환경 중 도대체 무엇이 달랐던 걸지를 밝혀내려 할 거다. A마을 사람들이 B마을 사람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더 화가 나 있었거나 더 절박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상점들이 더 허술하게 대비돼 있었거나, 아니면 경찰이 더 공격적이었거나, 아니면 A마을에 말빨이 좋은 선동가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런 게 상식적인 설명들이 될 거다. 분명히 무언가 차이가 있었던 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극도로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딱 한 사람의 한계점을 빼면, 이 두 무리의 사람들이나 그들의 환경에는 아무런 차이거 없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표적 요인(representative agent) 모델로 A마을과 B마을에서 벌어진 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마을 주민의 평균적인 특성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야만 하는데, 우리가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인 특성에는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와츠의 이야기는 우리가 폭동과 같은 개별 사건 기저에 깔린 원인(underlying cause)이 무엇인지를 밝혀냄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게 어려운만큼이나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폭동과 같이 심각한 수준의 사회적 불안정이 있었다면 그 기저에는 에 상응하는 심각한 수준의 사회적 문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인식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이런 사회적 문제가 실제로 폭동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면, 이런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뚱한 결론을 도출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폭동이 일어난 곳에만 현미경을 들이대고 "여기는 도대체 뭐가 특별했던 걸까?"를 고민하는 것보다 그 전에 다양한 경로로 표출되는 사회적 불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안 그러면 맨날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고 앉아 있게 될 거다.

2011/08/17 05:30 2011/08/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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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엽우의 생각

    Tracked from leafriend's me2day 2011/09/10 18:15  삭제

    폭동에 주목하지 마라 - 매우 유사한 초기 상태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결과만 놓고 거시적으로만. 원인을 분석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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