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비교적 과격한 폭동이 벌어진 가운데, 이를 대하고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태도들을 비교적 잘 정리한 글부터 하나 소개해보자.

영국 폭동, 격이 다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

이를 보면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인과관계와 전후관계를 혼돈하는 오류(Post hoc ergo propter hoc)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몇개월에서 몇년간 벌어진 사건들 중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순서대로 추리는 것 외의 근거라고는 별로 없이 이번 폭동에 대한 원인 등을 분석하여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흥미로운 건 최근의 무상급식 논란과 맞물려 “복지정책의 부재”를 지적해온 한겨례나 “과도한 복지정책”에 브레이크 걸 껀수(?)를 찾던 조중동이나 이번 폭동을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는 거다. 팀 하포드(Tim Harford)트위터를 통해 이번 영국 폭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대해 꼬집은 적이 있다.

The riots are clear confirmation of my long-held view that [insert pre-existing worldview here]. Or so various people seem to be saying.

복잡한 사회적 원인들이 얽혀서 나타나는 현상은 많은 경우에, 이렇게 끼워맞추면 이렇게 설명이 되고, 저렇게 끼워맞추면 저렇게 설명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이 평소에 갖고 있는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옳다는 것에 대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는 걸 지적한 거다. 이는 이런 논평을 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들을 읽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때마침 Center for Economic Policy Research에서 긴축재정과 폭동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으니 한번 살펴보자.

AUSTERITY AND ANARCHY: BUDGET CUTS AND SOCIAL UNREST IN EUROPE, 1919-2009 (제목을 클릭하시면 pdf 화일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논문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논문은 실제로 재정긴축이 사회적 안정을 해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We demonstrate that the general pattern of association between unrest and budget cuts holds in Europe for the period 1919-2009.

이것만 보면 조중동의 "복지랍시고 재정지출을 키우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논문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80년대 들어서는 이런 재정긴축과 사회적 불안 사이의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The fall of the Berlin wall saw the spread of Western-style democracy eastwards. The overall connection between austerity and social instability now changes sign, and becomes in insignificant.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의 한마디 정도가 전부라 아쉽지만, 복지국가의 급작스런(?) 재정긴축에 이번 폭동의 화살을 전부 돌릴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This suggests to us that non- economic causes became a dominant feature of the period.

소위 과학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는 걸 따지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특정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자신이 바라보는 그 시각이 세상을 정말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듯하기 때문에, 그런 시각을 쉽게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누군가가 어떤 사태에 대해 옳바른 해석을 내릴 때조차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다.

세상사를 간편한 원인과 결과로 나눈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에, 내가 세상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든, 나의 믿음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헛점투성일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다들 또 한번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 Hat tip to Economics Intelligence

@@ 이쯤에서 잠시 정치적인 이야기를 조금만 하자면, 나는 대한민국의 조세 부담율도 조금 더 올라가야 하고 복지예산도 지금보다 훨씬 더 올라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도한 복지정책”에는 반대한다.

여기서 “과도하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해야 하는데, 소득 분배의 구조상 소득의 평균(mean)과 전체 인구의 소득 중간값(median)이 엇비슷하다면, 국가가 중산층에게 복지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이럴 때 복지란 최상층의 소득 일부가 최하층에게 분배되는 기능을 수행하여야 하고, 이를 중산층에게까지 분배하려는 건 자멸적(self-defeating)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소득의 평균(mean)이 전체 인구의 소득 중간값(median)보다 높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국가 전체의 부가 상위 계층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징후로, 이 경우에 복지정책은 철저하게 최상층의 소득을 국민 대다수에게 분배함으로써 소득 분배의 구조 자체를 정상화(?)시키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정책이라고 다 같은 복지정책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런 차이에 대한 논의는 없이, 복지정책을 펼치면 국가재정이 파탄난다는 공식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국가재정의 파탄이란 그 돈을 뭐에 썼느냐와 관계없이 세금으로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많으면 발생하는 거지, 세금과 국가재정을 빨아먹는 복지라는 블랙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2011/08/14 17:48 2011/08/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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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dawnsea의 생각

    Tracked from dawnsea's me2day 2011/08/24 00:08  삭제

    확증 편향의 위험 자세한 병맛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것소이다.